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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 허영자 시집 『투명에 대하여 외』기사
문화일보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31일(水)

투명한 詩語, 텅 빈 마음을 채우고 비우다

뭔가를 채우고 비우는 일은 
영원한 꿈이요 이상이 아닐까 
그 염원을 엮어 시집에 실어  

詩 쓰면서 스스로 치유 얻어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됐으면


“시 쓰기라는 작업을 통해 저는 상처를 치유 받고 위안을 얻고 다소의 자기 정화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이러한 시 쓰기가 저의 존재를 확인하는 증표가 되고 시를 읽어주는 세상의 어느 친구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한국 시의 절제와 전통미를 지켜온 허영자(80) 시인이 새 시집 ‘투명에 대하여 외’(황금알)를 최근 펴냈다. 2부에 걸쳐 실은 69편의 시와 5편의 산문이다. ‘투명’을 주제로 한 시만 31편에 달한다.

허 시인이 유독 ‘투명’에 초점을 맞춘 건 뭔가를 채우고 비우는 일이 영원한 꿈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채움과 비움은 어쩌면 영원하고도 간절한 꿈이요 이상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 꿈을 향한 염원의 한 끝을 엮어 이 시집에 싣는다”고 말했다. 

1부 31편의 ‘투명에 대하여’에는 하나하나 부제가 달려 있다. 숨어 있는 투명, 실치, 섭리, 비단 허물, 무명, 순결, 그림자 등이다. 이 중에서도 ‘투명에 대하여2-실치’는 조그맣고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실치를 보고 느낀 소회를 담담히 적고 있다. 등뼈도 내장도 고스란히 드러낸 모습 앞에서 시인은 실치의 투명만큼도 못한 사람의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실치를 보고 있으면/ 부끄러워진다//(…) 참으로 사람의 마음이/ 실같이 가느다란/ 저 실치의 투명만도 못한 것인가” 

‘투명에 대하여16-순결’에서는 이상향의 도시 샹그릴라에 대한 종교적 염원이 깃들어 있다. 신비와 투명을 간직한 샹그릴라는 시인에겐 “불가촉(不可觸)의 성지이자 순결”이다. 

2부의 ‘지구’ ‘태양’ ‘화성’ 등은 태양계 행성으로까지 시선이 확장된 시인의 웅혼한 면모를 엿보게 한다. 시인에게 ‘지구’는 “흙, 바람, 물이 있는 고향이자 어머니”이고, ‘화성’은 “두고 온 고향의 폐가”다. 허 시인은 특유의 짧고 정제된 시어로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그는 “가능하다면 모든 곁가지를 치고 요설을 뺀 시를 쓰고 싶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고 고백했다. 

3부에 실린 5편의 산문에선 허 시인이 시에 빠진 이유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는 “궁극적으로 ‘외로움과 가난’ 때문에 시를 쓰게 됐다”면서 “내가 자라던 유년기의 시대나 사회는 너무 가난했다. 전쟁이 있었기에 평화를 꿈꾸었으며, 가난하였기에 풍요를 꿈꾸었으며 불행하였기에 행복을 꿈꾸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시였을까. 이에 대해 허 시인은 “언어를 매개로 하는 예술, 그중에서도 가장 함축적인 언어예술인 시의 매력이 나를 매혹하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허 시인은 1938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숙명여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1962년 현대문학에서 박목월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가슴엔 듯 눈엔 듯’ ‘친전’ ‘빈 들판을 걸어가면’ ‘기타를 치는 집시의 노래’, 시선집으로 ‘그 어둠과 빛의 사랑’ ‘무지개를 사랑한 걸 후회하지 말자’, 시조집 ‘소멸의 기쁨’, 동시집 ‘어머니의 기도’, 산문집 ‘살아있다는 것의 기쁨’ 등이 있다. 

월탄문학상, 편운문학상, 민족문학상, 목월문학상, 허난설헌문학상 등을 받았다. 성신여대 교수,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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