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필 시인의 시편들 중 고향과 바다를 중심으로 펼쳐진 시들이 눈에 밟힌다. 그의 곡진한 심상과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이력과 다정다감한 서정의 유영은, 어쩌면 바다가 잉태한 김승필의 배냇적 원형심상에 닿아 있을 듯하다. 가령 “산다는 것은 아슬아슬 한쪽이 기울어지며 돌아가는 일 아닌가”(「별정 우체국」)에서 위태로운 기울기에 대한 그의 느직한 태도는 다시 원점으로 에돌아가는 의지가 돋보인다. 이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명징한 생명의 숨비소리를 한 바다 가득하게 울려 퍼지게 하는 배려인 것이다. 그는 바다의 풍요로운 터전으로 순수한 욕망이 꿈틀대는 목가적인 풍경과 핍진한 삶의 현장이 육화한 시들을 바다에 펼친다. “이런 때늦은 사랑 하나쯤 품길 바라”(「늦잠」)는 화자의 진술은 일장춘몽 같지만, 소박한 욕망이 풍성한 바다의 먹거리를 통하여 식욕과 여서도라는 공간에서 꿈꾸는 관능적인 욕망이 어우러지면서 맛나고 재미있는 시를 잉태한다.
널배와 여자만 갯벌을 담금질하는 흐드러진 관능과 노동이 흠뻑한 공간에서 “뻘 밖의 사람들이 모르는 뻘 속 세상으로의 투신 오래전부터 어매들은 간간 짭조름한 생이라는 험한 바다를 터벅터벅 걸어”(「섬달천」)온 여인은 뭇 사람을 먹이고 키우는 대지모성大地母性으로 승화한다.
김승필 시인은 바다를 내륙까지 견인하는 인력으로 “할복 명태, 육즙이 빠진 입가에/ 꽁꽁 소리도 안 나는 울음을 토하”(「황태 덕장」)며 황금빛으로 갈무리한다. 죽어서도 오로지 바다로 귀결하는 집중력은 “쇠두껍을 씌운 참나무 말목에 메를 쳐 지겁을 판 뒤/ 성천을 쌓는 길”(「죽방렴」) 하나를 오롯하게 완성한다. 그의 바다는 바다에 한정하지 않고 뭍으로 올라와 축제를 벌인다. “사월포沙月浦로 열여덟에 장가”(「사월포 파시」)든 병업씨를 통해서 바다의 선원까지 물고기마냥 명주 그물로 감싸서, 모두 하나 되는 사월포 파시 축제는 흥겨운 남도의 울력을 보여준다.
또한, 바다에 대한 김승필 시인의 융숭 깊은 성찰은 섬과 섬을 이어주는 사랑으로 다가온다. “되돌아설 수 없게 되자 부둥켜안은 채 저, 바닷물 속으로 잠겨 들어”(「중노두」)간 정인情人들의 간절함으로 길고 긴 노두가 되어 섬과 섬을 이어주면서, 궁극엔 한 몸이 되었다. 이러한 정인들의 노두화하는 여정의 물길은, 북방에서 발원하여 남방을 가로지르는 역동적인 공간이동은 광막하다. 김승필 시인이 앞으로 가야 할 시의 예감까지 스쳐오지만, 한국시단의 남방정서를 한껏 확장하는 의미도 깊다.
-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