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란의 시편들은 시간에 밀려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외롭고 쓸쓸하고 슬프고 아린 시선으로 대상을 끌어안으며 한몸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상들과 동일시화 하는 곡비(哭婢)로서 역할뿐만 아니라, 일정한 간격으로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대상들과 서로 교감하지만, 그 정서를 고양하여 한 겹 벗어나 울 듯 울 듯하지만, 울지 않고 울음을 안으로 삼켜, 내면화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그는 절름거리며 자꾸 죽음 쪽으로 가고 있다/ 나는 그의 키보다 높았던 그의 지게를 생각”(「폐선」)하는 진술에서 보듯, 에둘러 소멸해 가는 대상보다 키가 큰 지게를 떠올리므로 절제와 승화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 또한, 새의 울음으로 화자(곡비)를 대신한 “현자가 갔다/ 새가 울었다”(「죽전(竹田)」)는 곡비로서 새의 현현은 그만큼 엄영란의 ‘아니리’의 화법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터이다. “강물이 강물을 끌고/ 하회가 느리게 흐른다./ 처음도 끝도 없이 흐른다”라는 시 「하회(河回)」에서 가족을 잃고 슬픔을 견디는 서사의 강물이, 시작도 끝도 없이 흐르면서 죽음을 넘어선 영원성으로 회귀하고 있으므로, 죽음도 화회라는 공간에서 삶의 영속성을 얻고야 만다. 그밖에 「나에겐 아름다운 아들이 있어」 「김이든 금이든」 「그네」 등의 시편들은 감각적이며, 대상들의 페이소스적인 상황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엄영란의 첫 시집을 가로지르는 특징 중 하나는, 급격한 고령화 시대를 맞아 생물학적으로 질병과 고통을 수반한 노인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관심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 밥 먹었어?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그녀가 묻는다 통유리 너머 마을버스가 지나간다 참기름 짜러 가야 하는데! 그녀는 참기름 집에서 자꾸 꺾어진다 참기름 같은 기억이 지나가는 중인가보다 잎 떨어진 나무가 검어”(「참기름 짜러 가야 하는데」)지는 기억이 희미해져 시공이 착종현상을 불러오는 서사의 장면은 리얼리티를 견인하면서도 언어를 이끌어가는 힘이 대단하다. ‘나 밥 먹었어?’라는 물음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당면한 생존의 물음표이고, 다시 생을 노래한 대긍정의 삶을 전개한다. 열 손가락 깨물면 어디 안 아픈 데가 있을까마는 엄영란의 시편들은 오랫동안 담금질한 튼실한 내력을 확인하는 시간들이다. 그러므로 엄영란의 다음 시집이 기다려지는 건 당연한 기대일 것이다.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