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다는 것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무심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무심해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그리움은 누군가를 고귀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흐르는 물속의 돌멩이는 먼 하늘의 흰 구름을 그리워하고, 갓 피어난 여린 새싹들은 태양을 그리워하고, 무너진 절벽은 감싸 안을 수풀을 그리워한다. 봄이 온다는 것은 누군가를 ‘당신’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아른아른 취해 아지랑이 먼 하늘을 황홀하게 우러르는 꽃들의 눈빛.
봄이 온다는 것은
아득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리움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그리움만으로는 그 무엇도 아닌 의미를 이제 내 것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아니 당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내가 곧 당신이 된다는 것이다. 사랑함으로서 비로소 내가 되는 나. 봄이 온다는 것은 아득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가지에 물오르듯 아아, 초록으로 번지는 이 슬픔.
- 서시 「누군가에게」 부분 |
오세영
1942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전남의 장성과 광주, 전북의 전주에서 성장했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1965∼1968년 박목월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지를 통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사랑의 저쪽』, 『바람의 그림자』, 『마른 하늘에서 치는 박수 소리』 등 27권과 학술서적 및 산문집으로 『시론』, 『한국현대시분석적 읽기』 등 31권을 저술하였다. 만해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소월시문학상, 고산문학상 등을 받았고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시집 『밤하늘의 바둑판』 영역본은 미국의 비평지 Chicago Review of Books에 의해 2016년도 전 미국 최고시집(Best Poetry Books) 12권에 선정되었다. 그 외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체코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된 시집들이 다수 있다.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예술원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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