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시는 살의 생크림 케이크 만들기며 그 케이크 드레싱 하기이고, 살의 에칭이며, 살의 실크 스크린이기에 일단은 아프다. 그 어느 구석 하나 푸근하거나 가서 쉴 만한 곳이 없다. 만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었다는 미다스 왕처럼 그의 손이 닿는 곳에는 그의 살점이 묻어난다. 그리고 그가 만진 그 모든 것들 역시 그의 살이 되어버린다. 이 ‘저주’는 자기중심적인 의인화와 활유법을 넘어선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엄태경은 일생 그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의 그러한 저주가 그를, 그리고 우리를 살게 할 단초를, 마치 어둠 속의 빛처럼 제시하기도 하니 고통이다.
- 김영승(시인)
엄태경 시인은 이미 귀신을 봤고, 현실 너머 그림자 세계와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길목도 잘 보고 있는 듯하다. “툭 등을 치는 투명한 웃음/ 구부러진 뒷모습 푸성구 할머니 허리가 접히도록 외로우셨나 보다/ 눈이 멀도록 읽어도 끝이 없다/ 하루하루가 몹시 고단하던 그 집도 지금 귀가 밝아져 듣고 있을까/ 배고픈 그 밥집 앞에 서면 아직 땀내와 고단함이 뒤섞인 기척들/ 아무 때나 칼날을 뱉지 마라 피 흘리는 신음에 흠뻑 젖어도 조심 또 조심/ 공장지대도 아니면서 낡은 기계들이 울고 수상한 기운에 별안간 가슴 미어지는 그곳/ 갯벌을 도려낸 바다는 시리게 쓸쓸하다 저녁 단단한 땅을 밟고 그 바다를 바라보면/ 떨리는 손길로 신발끈을 묶는 그의 어깨에서 시리도록 푸른 물이 솟는다/ 서 있는 사람들 자꾸 줄어드는 집과 마술처럼 사라지는 물건들 날렵하게 잘린 발목들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작은 시계가 귀찮은 듯 째깍, 날카롭게 잘라 대답할 때까지/ 어렴풋이 제 몸을 그려내는 세상 저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있다/ 있지도 않은 글씨체로 적었던 견뎌내야 한다 어찌 되었던 견뎌내야”하는 시詩의 곡비哭婢 엄태경 시인 눈물로 시는 빛이 난다.
-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간
엄태경 시인은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수도여자사범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 『믿음의문학』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으로 『그 집은 따뜻하다』가 있다. mizzy022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