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일탈의 순간』에 실려 있는 시들에서 우리는 일상적 존재의 껍질을 깨뜨리는 신선하고 눈부신 감각적 언어의 향연을 만나게 된다. 바다의 수막水幕을 뚫고 힘차게 솟아오른 물고기의 모습은 죽음에 맞서는 무모한 도발이며 생의 한계를 거부하는 존재의 자기 확인이다. 시인이 포착한 ‘도약의 꼭짓점’―그 일탈의 순간은 무의식의 심층에서 불끈 솟아난 ‘언어의 벼락’이며, 현실적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 생의 모험이다. 도약이 귀환으로 전복되는 그 일탈의 순간은 불꽃처럼 아름답지만 무지개처럼 허망하게 사라진다. 이 비약과 반동 사이의 낭만적 아이러니에 시인의 독특한 상상력이 놓인다. 현실과 환상, 존재와 초월, 과학과 관념 사이를 넘나드는 언어의 바탕에는 현대물리학적 지식과 교양이 깔려있다. 김길나 시인에게 있어 순간은 ‘순환회로에 감긴 아득한 시간’(「순간포착」)이며, 호박 넝쿨에는 ‘어제와 오늘이 병행하는 시계’(「호박 넝쿨」)가 달려 있다. 그것은 생시와 환상이 ‘거품우주의 막 안에 떠다니는’ ‘다중우주’(「0時」)이며, ‘눈부시게 폭발하던 초신성’(「절반의 행성」)에서 혼돈의 꿈을 꾸는 무의식의 형상이다.
- 조창환(시인)
시집의 전체적 독서를 마치면 우리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율과 함께 등이 서늘해짐을 느끼게 된다. 용이하게 번역되는 것이 아닌 “순환회로에 감긴” 코드들이 각 시편에 서로 의미망을 이루며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잘 나가던 필자의 글도 꽉 막힌다. 시편 하나하나는 균질성을 보이며 각각 문학작품으로서의 위의를 보이고 있으므로 그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작품 리뷰를 끝낼 수도 있다. 그러나 비밀이 내재하고 있음을 안 이상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범용한 지력은 코드의 연결회로를 찾기에도 바쁘고 필연적 긴장은 신경을 날카롭게 한다. 글쓰기를 중단하고 많은 책을 읽었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토머스 쿤은 꼼꼼히 읽어야 했다. 그리하여 글쓰기는 재개되었다.
- 호병탁(시인·문학평론가) |
김길나 시인은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그 시기에 문학청년인 삼촌뻘 되는 친척의 막강한 영향을 받아 문학인이 되겠다고 결심하다. 취학 이전에 문학도 모르고 문학을 꿈꾼 대책 없는 소망을 그 후 한 번도 접어본 적이 없는 대책 없는 외골수. 그러나 가톨릭에 입문하고 나서 종교와 문학과의 갈등을 겪으면서 등단이 늦어지다. 마침내 1995년에 첫 시집 『새벽날개』를 상자하고, 그해 『문학과사회』 겨울호 「문학공간」에 ‘지난 3개월 동안 우리가 주목한 시집들’ 리스트에 『새벽날개』가 오르다. 이듬해인 1996년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시가 발표되면서 작품 활동이 이루어지다. 시집으로 『빠지지 않는 반지』 『둥근 밀떡에서 뜨는 해』 『홀소리 여행』, 수필집으로 『잃어버린 꽃병』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