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知音. 문득 떠오른 말이다. 시인 오승철. 등림登林 무렵의 일이니, 그와 나의 허교許交도 어언 마흔 해를 헤아린다. 그가 백아라면 나는 종자기요, 내가 고른 거문고 줄을 그는 먼 제주에서도 단박에 알아차린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터수다.
책머리, 짧은 ‘시인의 말’이 가슴을 친다. “허랑방탕,/ 여기까지는 왔다.” ‘여기까지’가 아니고 ‘여기까지는’이다. 이 미묘한 감성의 낙차.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을 묶게 했는지도 모른다. 단시조 예순일곱 수. 시조집이라 했지만, 실은 그가 쓴 단시조의 전집인 셈이다.
시조의 본령인 단시조에 그는 집요하리만치 일관되게 제주의 정서를 담는다. 그러면서 정형미학의 한 정체를 보여준다. 그 속에는 제주의 역사와 인물, 풍경과 풍물, 사람살이의 안과 밖이 오롯하다. 제주의 산과 바다, 오름과 올레, 꽃과 새, 짐승과 곤충을 망라하기 때문이다.
오승철 시조의 고갱이는 그 특유의 말맛에 있다. 이는 언어의 탄력과 정감, 심상과 율격의 결속 없이는 불가능하다. “북채를 들지 않아도/ 북이 먼저 울겠네” “어차피 못 가져갈/ 벚꽃은 그냥 두고” “할머니 유모차 슬쩍/ 같이 밀고 가는 봄비” “종지윷 날리는 상가, 개평 뜯고 가는 놀빛” “바닷길 쪽으로만/ 기우는 가지가 있다” 등에서 보듯, 그는 자연과 인간의 절묘한 만남을 통해 정신의 질량을 높여간다. 그렇게 감동이면 감동, 여운이면 여운의 잣담을 쌓아 가는 것이다.
그의 시조에는 워낙 ‘꿩’의 출현이 잦다. ‘꿩’은 진작부터 그의 시조를 관통하는 핵심 시어로 작용한다. “위미리/ 옛집 그 너머/ 사발 깨듯” 울던 것이 “갓 쪄낸 쇠머리떡에/ 콩 박히듯” 울기도 하니, 이만하면 ‘꿩’ 하나로 오승철 시조의 전경화全景畵를 시도해 봄직도 하다.
『길 하나 돌려세우고』, 그는 지금 또 다른 길 위에 서 있다. “달강달강 온몸으로 감당해낸 끌탕의 세월”일망정, 다만 저 절현絶絃의 길만은 멀리 에두를 일이다.
- 박기섭(시인) |